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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케스 바이에른 뮌헨을 완성하다(초석, 신화, 정상)

by 월백수 2025. 5. 20.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독일의 명문 구단을 여러 차례 지휘하며 그 정체성과 전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끌어올린 상징적인 감독입니다. 그는 총 세 차례 바이에른의 지휘봉을 잡았고, 각각의 시기마다 다른 과제와 시대적 맥락 속에서 팀을 리빌딩하고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하인케스는 단순한 우승 제조기를 넘어, 위기 상황 속에서도 팀을 단단하게 만드는 신뢰의 상징이었으며, 전술의 안정성과 리더십으로 ‘바이에른을 완성시킨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3차례 바이에른 재임기를 중심으로, 각 시기의 의미와 업적을 집중 조명합니다.

뮌헨시절 하인케스

첫 번째 바이에른 시절: 초석을 다지다 (1987~1991)

하인케스의 첫 번째 바이에른 뮌헨 감독 재임은 1987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바이에른의 정통성과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팀의 세대교체와 전술적 전환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는 전임 감독 우도 라텍의 뒤를 이어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서 팀을 맡았지만, 당시 바이에른은 유럽 무대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되던 시기였습니다. 하인케스는 4년 동안 리그 우승 2회(1988-89, 1989-90), 독일 슈퍼컵 2회 우승을 이끌었고, 꾸준한 리그 상위권 유지로 팀의 내실을 다졌습니다. 전술적으로는 4-4-2 포메이션을 안정적으로 적용하면서, 공격수의 공간 창출과 측면 공격을 강조했습니다. 하인케스는 이 시기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 자원의 조화를 통해 팀의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준결승 이상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1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하인케스는 바이에른 내부에 ‘조직적이고 책임감 있는 감독’이라는 인식을 남겼으며, 이후 그가 두 번째로 팀에 복귀하는 계기를 제공한 시초가 되었습니다. 팀 내부의 질서를 세우고 장기적인 운영 기반을 다졌다는 점에서 ‘초석을 다진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2011~2013 황금기: 트레블 신화

하인케스의 두 번째 바이에른 재임기는 그의 커리어 중 가장 위대한 시기로 기록됩니다. 2011년, 루이스 판 할 감독의 경질 후 하인케스는 23년 만에 다시 바이에른의 감독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팀은 리그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밀려 자존심을 다친 상황이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우승에 그치며 갈증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하인케스는 복귀 이후 팀의 기본기를 다지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기존 선수들의 위치를 재정비하고, 리베리, 로벤, 뮐러, 슈바인슈타이거 등 핵심 자원들의 기량을 극대화하며 팀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2011-12 시즌엔 또다시 챔피언스리그와 포칼 준우승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더 강력한 팀으로 바이에른을 재조직했습니다. 2012-13 시즌은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바이에른은 리그, 포칼,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제패하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는 바르셀로나를 합산 7-0으로 꺾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결승에서는 도르트문트를 2-1로 제압하며 유럽 정상에 섰고, 하인케스는 자신이 이끈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며 감독 인생의 절정을 맞이했습니다. 하인케스의 전술은 단단한 조직력과 빠른 전환, 강한 압박이 조화를 이루는 ‘정석적 현대 축구’의 완성형이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말보다는 묵직한 실천과 결과로 평가받았고, 이 시즌 이후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며 박수 속에 무대를 떠났습니다. 바이에른 팬들에게는 ‘가장 품격 있는 우승’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7년 복귀: 위기의 구단을 다시 정상으로

하인케스는 2017년, 예상치 못한 네 번째 바이에른 복귀로 다시 한 번 팀을 맡게 됩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성적 부진과 선수단 분열로 인해 구단은 위기에 처해 있었고, 단기적 안정과 조직력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구단은 은퇴한 하인케스를 설득해 임시 감독으로 복귀시켰고, 이는 ‘명장의 품격’이 다시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인케스는 복귀 직후 선수단의 분위기를 수습하고, 체계적인 훈련과 소통을 통해 전술의 통일성을 회복시켰습니다. 당시 뮐러, 하비 마르티네스, 레반도프스키 등 핵심 선수들이 안첼로티 체제 하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지만, 하인케스는 각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배치와 전술을 빠르게 정립했습니다. 그 결과 바이에른은 2017-18 시즌 분데스리가를 조기에 우승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결승에 오르며 경기력을 회복했습니다. 비록 유럽 정상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팀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그의 리더십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인케스의 마지막 바이에른 재임은 ‘안정과 회복의 상징’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당시 7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전방에서 전술을 직접 지휘하고 선수들과의 소통을 이어갔으며, 경기를 넘어 구단 운영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처럼 하인케스의 세 번째 바이에른 시절은 단순한 단기 대행이 아닌, 구단 전체에 구조적 신뢰를 복원하는 시기였으며, 그가 왜 바이에른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감독인지 증명한 시간이었습니다.

유프 하인케스는 바이에른 뮌헨의 역사에서 단순한 트로피 수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재임 기간 동안 각기 다른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위기와 성공의 순간마다 팀을 안정시키고 완성시킨 감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존재는 전술보다 깊고, 리더십보다 묵직한 신뢰의 상징입니다. 하인케스는 바이에른이라는 팀을 넘어, 유럽 축구 전체에 ‘품격 있는 명장’으로 기억될 것입니다.